2008년 01월 12일
1986
초역사주의적인 비일상은 역사주의적인 일상으로 바뀌고,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책읽기, 그림 보기에서 현실보기로 바뀌고 있다. 소설로 보자면 그것은 일종의 진전이지만, 이제하의 광기가 그만큼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13p)
선명하지 않은 것도 선명하게 선명하지 않아야 한다(14p)
육체는 자기가 고통스러우면 사고를 중단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고통에서 먼저 해방되려 한다. 맹목적이 아니라 맹사적이라고 할까.(17p)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25p)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38p)
가장 약한 감정은 슬픔/그리움 등이며, 가장 약한 현상은 죽음이지만, 그것들이 이 세상을 미치게 아름답게 만든다.(40p)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강강수월래를 추고 있었다. 그 빛나는 돎 속에 내가 모르는 어떤 성적인 것이 숨겨져 있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애달아하였다.(49p)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54p)
사람은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을 본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60p)
1987
그 넋두리는 때로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삶의 구체성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아 지루한 다짐 같아 보인다. 술취한 사람이 내지르는, 그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럴 수도 있는 것들과 같이, 끈질기게 지루하다. ...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에 전연 관심이 없다는 듯, 자기만이 거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듯, 그 되풀이는 지루하게 끈질기다. (64p)
삼각 관계의 기본인 질투심(66p)
이미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제시하는 데서 생겨난 부조화(68p)
절제 속에 응축된 감정이 없고, 절제를 위한 절제만이 있을 때, 절제는 속임수로 나아간다. 절제가 힘을 얻는 것은 진솔한 감정이 응축되어 자신을 숨기고 있을 때이다. (70p)
삶에 있어서 절실한 것, 절절한 것은 거의 대부분 환상처럼 보인다. 그것이 환상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삶의 밋밋함과 대립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절실한 것이 이뤄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아름답기 때문에 밋밋한 삶 속에서 지속되기 힘들다, 아니 지속되지 못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의 빛과도 같다. (80p)
그들이 나를 욕망하지 않으니, 내 욕망도 없어진다......(82p)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리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여기가 역설이다- 결정해버린 사람의 비극!(87p)
이제는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나는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96p)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96p)
모든 요괴들은 인간의 분신들이다. 요괴라고 불리는 것들은 자기 정체성이 위기에 처할 때 나타난다. ... 내가 나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닐 때, 나는 요괴다. ... 밖은 따뜻한데, 안은 춥다. 그것도 요괴스런 일이다. ... 내 마음의 풍경 같다. (99p)
모든 진리는 자기 확장적이다. 어떤 관념이 자기를 진리라고 믿을 때, 그것은 맹렬하게 팽창한다. 주먹만하게 줄어들었다가 크게 폭발한 우주처럼. 그러나 그 우주에도 끝은 있다. (113p)
죽음의 기억은 전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이다. (123p)
1988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내 활력은 잊음에서 나온다. (128p)
몰락해가는 계층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답다.(136p)
장자의 무용지용에 대한 퉁명스러운 반론: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자는 게요, 제기랄."(150p)
내 육체가 처음 겪는 기이한 체험: 늙는다는 체험. 육체가 거기에 길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155p)
타자의 철학: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165p)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168p)
제스처의 왕성함이 아니라 감정의 절실함만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169p)
1)언제나 누군가가 기록을 하고 있다. 그 기록은 패한 사람의 기록일수록 희귀하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긴 사람의 기록은 너무 많이 선전되고 홍보되기 때문에, 지식으로 들어오며, 지식이 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재미는 호기심에서 연유한다.
2) 패한 자의 기록은 증오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패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낳는다. 패한 사람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증오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173p)
희생 제의에서 중요한 것은, 희생물도, 희생 제의 과정도 아니고, 그것을 전하는(혹은 묘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175p)
하나가 된 소리로 같은 말을 지껄여대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177p)
죽음의 맛은 없다. 그것을 쓰다고 하는 놈들은 다 개새끼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안 죽어본 놈들이다. 무섭도록 겁이 나면, 입술이 마르고, 아무것도 없다. 입술이 쓰디쓸 때는 이미 정신이 돈 뒤이다. (183p)
수다의 밑에는 공포심이 숨어 있다. (187p)
1989
악마 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 (198p)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또 시인이지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시집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p)
오래 자주 들으면 소리의 구조가 귀에 보인다. 그때가 고비다. 그 구조가 보이는데도, 좋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그 구조가 보이면 소리가 상투적이 되어버리는 소리가 있다. (205p)
자기가 무엇을 싫어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하나의 징후이다. (208p)
죽음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230p)
어떻든 한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231p)
삶의 순간순간이 죽음과의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희희낙락 지낸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죽음의 실감도 없으리라. 많이 아프라, 죽음이 너를 무서워하도록. (232p)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241p)
이름있는 사회학자들의 거의 모든 책은 죽었으나 소설들은 살아 남았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나지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250p)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여건이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공포/불안/초조...... 등의 심리적 반응이다.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그것에 대한 사유로 이끌어들이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죽음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온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다. (255p)
너무 앞서가면, 결국 고독해지고, 자기가 본 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회의하게 된다. 그것을 견디어내야 살아 남는데, 어쩌랴,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56p)
뛰어난 작가들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비평가도 자란다. 자라지 않는 비평가를 보는 것은 나이든 난쟁이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 (266p)
# by deadskin | 2008/01/12 01:15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