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

빛나던 자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항상 시간의 흐름, 적응할 수 없는 나이듦에 대해서 얘기한다

변화들, 열정에 대한, 피부에 대한, 책임에 대한, 관계에 대한...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우리는 그에 적응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한다
흔적, 기억을 남기는 거 그것이 우리를 살게하는 것 같다

이상... 02년부터 04년까지 끄적거리던 글들을 읽다가 생겨난 감상임

by deadskin | 2009/07/14 16:49 | 일상 | 트랙백 | 덧글(4)

텅빈느낌

허무하고 텅 비었다.

by deadskin | 2009/03/28 15:38 | 트랙백 | 덧글(0)

하루

아 행복하다...............................................................................

by deadskin | 2008/03/17 23:12 | 트랙백 | 덧글(1)

적당한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나의 보폭은 꽤 넓어서, 대부분은 너무 다가가 버리거나 너무 떨어져있다.
그래서 나는 질려버리거나 외로워져 버린다.
좀 더 잘하고 싶은데.....

by deadskin | 2008/01/28 21:53 | 트랙백 | 덧글(5)

조개구이...

논현역 쪽에 갯벌의 진주라는 데가 있다는데 가보고 싶다
연남동에 있는 싸고 맛있(다)는 초밥집 '김뿌라'도 가고 싶고...
어제부터 맛집 사진 보며 정신없이 침흘리는 전하영

by deadskin | 2008/01/14 21:12 | 트랙백 | 덧글(0)

무방비 도시

'소매치기'라는 상업영화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심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끊을 수 없는 혈연과 인연으로 얽혀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를 할켜대는 가족 관계가 이 영화의 드라마의 축을 이르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의 범죄가 그토록이나 헐겁게 보였던 것일까. 앞뒤 상황에서 논리적인 연결이 잘 안되어 있기 때문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면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툭툭 튀어 나와서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타짜'인 줄 알고 봤더니 '범죄의 재구성'이었던 영화라고나 할까.....

이 영화를 보면서 몇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
1. 조대영이 형사가 된 것은 그의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머니 강만옥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강만옥의 모성애를 부각시키지 않고서(그 장면들에서의 클리셰들이란!)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무덤 앞에서 우는 그가 그리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2. 과거/현재 모두 조대영의 시점에서 흘러가던 영화가 마지막 회상 장면이 나오며 백장미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이 불일치는 굉장히 미숙하게 느껴진다. (만약에 마지막 회상 장면을 지금 위치-다분히 반전효과를 기대한 듯한-가 아니라 미리 알려줬더라면, 강만옥이 다시는 소매치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동기도 명확해지고 백장미의 성격도 더 다층적이게 되며 둘의 복잡한 관계 또한 더 그럴 법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괜히 반전쓰려 하지 말고 정공법을 썼으면 더 센 영화가 되었을텐데...)
3. 백장미의 회사에서 일하던 중년의 기계 아저씨(이름 모르겠다)는 중간에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백장미가 죽이지 않은 다른 쌍둥이 아저씨는 어떻게 된건지? 극에 필요 없으면 그냥 빼버리는 것??
4. 제목을 왜 '무방비 도시'로 지었을까? 실제로 영화 속 소매치기들의 스케일은 동대문에 쇼핑나온 여자들 푼돈이나 훔치는 거다. 백장미의 옷값 마련을 어떻게 했는지.....
5. 백장미가 쌍둥이 패거리에게 당할 때 조대영이 그녀를 구해준다. 그 때 손예진은 계속 전신주 밑에 누워있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하.


p.s. 어제 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굉장히 좋았다.

by deadskin | 2008/01/14 20:38 | 트랙백 | 덧글(2)

행복한 책읽기: 김현의 일기 1986~1989

1986

초역사주의적인 비일상은 역사주의적인 일상으로 바뀌고,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책읽기, 그림 보기에서 현실보기로 바뀌고 있다. 소설로 보자면 그것은 일종의 진전이지만, 이제하의 광기가 그만큼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13p)

선명하지 않은 것도 선명하게 선명하지 않아야 한다(14p)

육체는 자기가 고통스러우면 사고를 중단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고통에서 먼저 해방되려 한다. 맹목적이 아니라 맹사적이라고 할까.(17p)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25p)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38p)

가장 약한 감정은 슬픔/그리움 등이며, 가장 약한 현상은 죽음이지만, 그것들이 이 세상을 미치게 아름답게 만든다.(40p)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강강수월래를 추고 있었다. 그 빛나는 돎 속에 내가 모르는 어떤 성적인 것이 숨겨져 있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애달아하였다.(49p)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54p)

사람은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을 본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60p)


1987

그 넋두리는 때로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삶의 구체성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아 지루한 다짐 같아 보인다. 술취한 사람이 내지르는, 그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럴 수도 있는 것들과 같이, 끈질기게 지루하다. ...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에 전연 관심이 없다는 듯, 자기만이 거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듯, 그 되풀이는 지루하게 끈질기다. (64p)

삼각 관계의 기본인 질투심(66p)

이미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제시하는 데서 생겨난 부조화(68p)

절제 속에 응축된 감정이 없고, 절제를 위한 절제만이 있을 때, 절제는 속임수로 나아간다. 절제가 힘을 얻는 것은 진솔한 감정이 응축되어 자신을 숨기고 있을 때이다. (70p)

삶에 있어서 절실한 것, 절절한 것은 거의 대부분 환상처럼 보인다. 그것이 환상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삶의 밋밋함과 대립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절실한 것이 이뤄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아름답기 때문에 밋밋한 삶 속에서 지속되기 힘들다, 아니 지속되지 못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의 빛과도 같다. (80p)

그들이 나를 욕망하지 않으니, 내 욕망도 없어진다......(82p)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리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여기가 역설이다- 결정해버린 사람의 비극!(87p)

이제는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나는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96p)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96p)

모든 요괴들은 인간의 분신들이다. 요괴라고 불리는 것들은 자기 정체성이 위기에 처할 때 나타난다. ... 내가 나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닐 때, 나는 요괴다. ... 밖은 따뜻한데, 안은 춥다. 그것도 요괴스런 일이다. ... 내 마음의 풍경 같다. (99p)

모든 진리는 자기 확장적이다. 어떤 관념이 자기를 진리라고 믿을 때, 그것은 맹렬하게 팽창한다. 주먹만하게 줄어들었다가 크게 폭발한 우주처럼. 그러나 그 우주에도 끝은 있다. (113p)

죽음의 기억은 전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이다. (123p)


1988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내 활력은 잊음에서 나온다. (128p)

몰락해가는 계층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답다.(136p)

장자의 무용지용에 대한 퉁명스러운 반론: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자는 게요, 제기랄."(150p)

내 육체가 처음 겪는 기이한 체험: 늙는다는 체험. 육체가 거기에 길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155p)

타자의 철학: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165p)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168p)

제스처의 왕성함이 아니라 감정의 절실함만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169p)

1)언제나 누군가가 기록을 하고 있다. 그 기록은 패한 사람의 기록일수록 희귀하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긴 사람의 기록은 너무 많이 선전되고 홍보되기 때문에, 지식으로 들어오며, 지식이 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재미는 호기심에서 연유한다.
2) 패한 자의 기록은 증오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패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낳는다. 패한 사람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증오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173p)

희생 제의에서 중요한 것은, 희생물도, 희생 제의 과정도 아니고, 그것을 전하는(혹은 묘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175p)

하나가 된 소리로 같은 말을 지껄여대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177p)

죽음의 맛은 없다. 그것을 쓰다고 하는 놈들은 다 개새끼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안 죽어본 놈들이다. 무섭도록 겁이 나면, 입술이 마르고, 아무것도 없다. 입술이 쓰디쓸 때는 이미 정신이 돈 뒤이다. (183p)

수다의 밑에는 공포심이 숨어 있다. (187p)


1989

악마 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 (198p)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또 시인이지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시집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p)

오래 자주 들으면 소리의 구조가 귀에 보인다. 그때가 고비다. 그 구조가 보이는데도, 좋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그 구조가 보이면 소리가 상투적이 되어버리는 소리가 있다. (205p)

자기가 무엇을 싫어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하나의 징후이다. (208p)

죽음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230p)

어떻든 한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231p)

삶의 순간순간이 죽음과의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희희낙락 지낸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죽음의 실감도 없으리라. 많이 아프라, 죽음이 너를 무서워하도록. (232p)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241p)

이름있는 사회학자들의 거의 모든 책은 죽었으나 소설들은 살아 남았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나지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250p)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여건이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공포/불안/초조...... 등의 심리적 반응이다.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그것에 대한 사유로 이끌어들이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죽음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온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다. (255p)

너무 앞서가면, 결국 고독해지고, 자기가 본 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회의하게 된다. 그것을 견디어내야 살아 남는데, 어쩌랴,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56p)

뛰어난 작가들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비평가도 자란다. 자라지 않는 비평가를 보는 것은 나이든 난쟁이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 (266p)

by deadskin | 2008/01/12 01:15 | 트랙백 | 덧글(3)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59p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쓰는 작품들을 부끄러워하면서 꽤 오랜 -너무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시든 소설이든 단 한 줄 이라도 발표한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게서 하늘이 주신 재능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듣게 마련이라는 것을 내가 비로소 깨달은 것은 아마 마흔 살 때였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그림이나 무용이나 조각이나 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의 기분을 망쳐놓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173p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 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비평가나 창작 교사들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개방적이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들이다. 동네 컨트리 클럽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토박이 미국인을 배척하는 데 항의하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학생들에게는 저마다 창작 능력이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한번 삼류는 영원한 삼류라는 것이다.

by deadskin | 2007/12/23 11:51 | 트랙백 | 덧글(0)

어느 토요일 오후에

일어난지 일이분 정도 되었나...
아빠와 엄마

아빠와 엄마..ㅋㅋ
우리 셋이 이러는 동안 은영이는 방에서...
화장을...

삐직-

by deadskin | 2007/12/13 13:11 | 일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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